본문으로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 무주문화원 소개 > 연혁 및 역대문화원장 > 역대문화원장

역대문화원장

초대, 2대 김홍기원장

김홍기 원장

문화원 초창기 활동 이야기

초창기 문화원 활동 중 기억나는 것 중의 하나는 현재 주계 음우회원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한 점이다. 김경석(4,5대 문화원장), 김내생(6,7대 문화원장) 씨 등이 강한 열의로 문화원 행사에 앞서 공연을 가짐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뒤 문화원 행사를 진행한 것이다. 초기에는 내실을 다지는 사업보다는 무주군민에게 문화원을 알려야 했기 때문에 주로 행사 위주였고, 관련 단체의 악기를 구입해 주는 등 외형적 사업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딧골 문화』는 이사회의 결의를 거쳤고, 당시 무주군청 공보실의 김경석, 신호상(前 기획실장) 등과 함께 논의하였고, 이들을 중심으로 발간하게 되었다. 문화원 활동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분야별로 두드러진 활동을 한 분들이 나오게 되었다. 역사는 김경석 전 문화원장, 문학은 전선자 씨, 민속은 유재두 씨 등이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삼도봉 만남의 날 행사

문화원 설립 준비와 병행하여 1989년에 삼도봉 행사를 개최하였는데 당시의 정세가 갈등과 분열에 집중되어 화합이 아쉬웠다. 마침 무주군이 충청도와 경상도, 그리고 전라도 3도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삼도가 화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이것을 충청도의 영동 문화원장과 경상도의 금릉(現김천) 문화원장 등과 합의한 뒤,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이후 3개 시군이 돌아가면서 개최하게 되었다. 삼도봉 행사와 병행하여 교류와 화합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서 1992년부터 삼도 친선 화합 대회를 개최하였여 상호 간에 교류와 화합 그리고 상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하였다. 상대 지역에 관한 문화와 역사 이해 등을 바탕으로 잔치를 벌였다.

당부의 말

삼도 화합의 디딤돌이 되는 삼도봉 행사를 추진하였고, 청정 무주 반딧불의 이미지를 갖는데 일익을 담당하였고, 반딧골 문화로 문학하는 사람들을 많이 배출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그러나 문화원 자체 건물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으로 문화원이 독립적인 건물을 확보하여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틀을 갖추었으면 좋겠다. 문화원의 역할은 지역민이 함께 소통하고 화합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는 데 있다고 본다. 따라서 특정 분야만 집중하지 말고, 예총 형태로 함께 활동을 했으면 한다. 문화원을 중심으로 예술단체와 향토 문화 연구가 함께 어우러졌으면 좋겠다.

제4,5대 김경석원장

김경석 원장

8년 간의 무주 문화원장 역임과 무주 향토사 발굴 정리

공무원 생활 중 문화재 관리 업무를 맡아 하면서 지역 향토 문화와 향토 사료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향토 문화 전승에 역점을 두고, 무주의 역사와 관련된 고서와 고문서 등을 찾게 되었다. 그 결과 조선 시대 무주 도호부 관아에서 기록하여 중앙에 보고한 『무주부읍지』를 비롯하여 조선 시대 무주향교에서 펴낸 『적성지』(天)를 비롯하여 근세에 펴낸 『적성지』(地), 『적성지』(續誌) 등을 찾았으나 모두 한자로 되어 있는 관계로 한문에 문외한이던 필자가 읽을 수 없었다. 이에 이런 책자들을 한글로 번역하여 후대에게 보급할 뿐 아니라 우리 고장의 역사를 쉽게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문화원에서 펴낸 『무주 인물지』를 비롯한 『적성지』(천·지·속지)와 『조선왕조실록 무주군』 편(상·하), 『적상산사고실록 형지안』, 『적상산사고 선원록 형지안』 번역 등 무주에 관한 향토 사료의 국역 사업을 추진하여, 후대 학자들의 우리 고장 연구 자료가 되도록 힘을 쏟았다.

무주 문화예술 분야의 기틀 마련

문화원장 재임 중 향토사와 관련된 일만 한 것은 아니었다. 매년 문화원 주관으로 개최되던 ‘삼도 문화 가족 친선 화합행사’를 비롯하여 매년 10월 10일에 거행되는 ‘삼도봉 만남의 날’ 행사, 반딧불 축제 때마다 개최되는 ‘전국 학생 종합 예술 대전 유치’, 무주·영동·금산 간 삼도 여성 합창 발표회 및 전국 문화 관광 사진 공모전 등으로 무주 문화 홍보에 일익을 담당 하였다. 또한 문화 가족 회원들의 문화 유적 탐방 사업, 문화 가족의 밤 행사, 남대천 수상공연, 문학 강연회 및 문학 관련 심포지엄 등 행사를 진행하여 문화 예술분야에도 힘을 기울였다. 특히 눌인 김환태 선생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선양하는 일에 나섰다. 그 결과 문학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2005년 11월에 「눌인 김환태 선생 문학 심포지엄」을 전통문화의 집 강당에서 열었다. 이를 계기로 2009년 5월에는 ‘눌인 김환태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제1회 눌인 김환태 문학제」를 개최하여 전국의 유명 문인들이 대거 참여하였고, 곁들여 「눌인 문학상」까지 이 행사에서 시상하는 전통을 세우게 되었다. 지금은 ‘눌인 김환태 문학 기념 사업회’로 명칭을 바꾸고 사단 법인으로 등록하여 활동하고 있다.

무주문화원에 하고 싶은 이야기

문화원에 조금 더 도움을 주고 활동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현재 개인적으로 건강 문제 등으로 외부활동이 쉽지 않아 스스로 활동을 자제하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나날이 발전하고 진보하는 현대사 속에서 특히 향토사 분야의 발굴과 정리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우리 무주문화원이 문화원 부설 향토사 연구소에서 활동할 인력을 확보하여 우리 지역의 향토사 발굴과 정리를 함에 일선에서 활동했으면 한다.

제6,7대 김내생원장

무주문화원의 위상 정립과 공간 확보

원장에 취임했을 때 사무실 운영비와 기타 경비 등은 열악한 상황이었고 거기에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문화원이 뭐하는 데냐?", "문화원이 어디에 있느냐" 등의 질문을 숱하게 받았다. 타 시군에 비해 문화원 위상이 확립되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다른 단체는 500명, 600명 정도 되는데 비해 문화원 회원은 140~150명 정도로 너무 적었다. 그나마도 단체 회원이었는데 단체에 먼저 집중하는 관계로 막상 문화원 행사에는 적극적인 참여가 되지 못하였다. 이에 개별 회원으로 전환시키면서 연회비 2만 원의 회원 가입을 유도하고, 문화원 이사를 증원하여 25명으로 확대하였다. 문화 학교를 통해 중장년층의 회원을 모집하고, 문화 탐방을 통해 노년층의 회원을 모집하니 회원의 만족도 및 참여도가 높아지고 문화원의 위상도 많이 올라 간 것이 눈에 보였다. 더불어 부족한 예산과 운영비로 인해 공모 사업에 치중하였고, 다행히 1년에 2, 3개의 공모 사업에 선정되며 프로그램을 운영할 공간을 요청했더니 ‘공예 정보 센터’를 거쳐 현재의 문화원(최북 미술관 1층)으로 장소를 이전하게 되면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생활문화예술 전파

문화원의 위상을 높이고 지역에 문화 예술을 전파하기 위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문화 학교를 대폭적으로 확대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다. 다른 문화원에서 많이 하는 전통적인 강좌도 좋지만, 문화 센터가 없어 외부로 나가야 하는 현실에 맞춰 생활문화 강좌를 대폭 확대했다. 부족한 예산에 강사들이 자원봉사 형태로 야간 강좌를 진행해 주기도 하면서 500명이 넘는 수강생이 문화 학교에 참여해 문화와 예술, 그리고 문화원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다행히도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행정에서 예산을 대폭적으로 늘려줘 전라북도 문화원 중에서 제일 많은 문화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이전에는 지원자가 부족해서 걱정이었지만, 이제는 접수 당일 새벽부터 기다리고도 접수를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지역의 한정적인 문화 예술 시각을 넓히기 위해 국악이나 재즈 같이 새로운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조금은 무모하다 생각되었지만 많은 군민이 참여하고 호응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업 - 전라북도 문화원 축제의 시발

전임 원장이 향토사 연구에 남다른 성과를 내셨다면, 주민과 함께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서 생활문화예술 분야 활동에 집중했다. 그 중에서 무주 반딧불 축제에 지역의 문화예술인이 축제에 참가할 수 있도록 길거리 문화제라는 사업을 만들어 진행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전북 지역 각 문화원을 비롯하여 대구 서구 문화원을 초청하여 3일간의 공연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무주에도 다양한 문화예술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전라북도 김완주 지사가 이를 보고 적극 지원하였고, 전라북도 문화원 연합회장이 직접 관람한 뒤 전라북도 문화원 축제로 격상시켜 매년 전라북도 각 문화원을 순회하며 개최했다. 이것이 나중에 ‘전북문화의 날’을 제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후에 무주문화원 재능터라는 이름으로 60개 팀 500명이 넘는 무주군민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가 되어버렸다. 9일 중에 장장 6일 동안 무주군민의 공연이 진행되고 30개가 넘는 부스를 온전히 무주 문화 예술인의 힘으로 꾸려냈고, 무주의 문화로 이만큼 성장했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